나는 누가 봐도 좋은 대학에 다녔다. 교수인 아빠와 맹모삼천지교를 실천하는 엄마 덕에 어릴 때부터 학군이 좋은 곳으로만 옮겨 다녔다. 캐나다에서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도 람보르기니가 즐비하도록 부모님이 투자를 아끼지 않는 친구들과 그 대학 캠퍼스 내에 있는 공립 1위인 고등학교를 다녔다. 전공을 바꾸면서 그리고 일을 시작 하면서 캠퍼스 밖의 사람들과 마주했을 때 사회성을 기르는 일 이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캠퍼스 안에서 벌어지는 일과 상식이 더 이상 상식이 아닌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또한 내가 스쳐 지나가던 것들의 procedural memory를 불러와야 했던 2년간의 시간 동안 내외로 갈등을 많이 겪었다.
현재 내 포지션이 정확히 뭐라고 설명하긴 어렵지만 많은 시간을 마케팅을 하는 내 관점에서 가장 전문가인 아빠의 핀트가 매우 어긋났다. 기자의 질문에 동문서답으로 답하는 일이 많아 항상 함께 참석해서 요점정리를 해 주어야 했다. "아니 그렇게 하면 일반인들이 못 알아듣잖아요." 처음엔 단지 분야가 달라서라고 생각했지만 방을 뒤지다 발견한 몇 년 전 초안이 완벽하게 이해가 쏙쏙 돼서 깜짝 놀랐다. "왜 이렇게 할 수 있는 걸 말 안 해 줬어?!"
처음에는 덧셈 뺄셈, 그 다음에는 곱셈 나눗셈, 그다음에는 그것을 응용한 복잡한 계산. 복잡한 계산을 하다 보면 사라지는 것은 primary memory이다. 어떻게 내가 현재 이 스킬을 구현하는지 시간이 지나면 당연하게 잊어버리게 된다. 사이언 베일락의 <부동의 심리학>에서는 심화된 지식까지 도달하는 데 거쳐 온 procedure을 기억하고 있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고 한다. 어떤 지시가 던져졌을 때, 휴대폰 전문가와 휴대폰이라는 물건을 처음 사용해 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걸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예상 시간이 휴대폰을 조금만 사용해 본 사람보다 훨씬 짧았다 - 전문적 지식의 저주.
동급의 학생에게 어떤 개념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교수님이 설명하는 것보다 쏙쏙 이해될 것이다. 교수님은 자신이 어떻게 그 개념을 습득했는지 조차 기억을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문화권에서 십 년 만에 돌아온 나는 일상의 사소한 문제 하나하나 이러한 것을 겪고 있다. 지나고 보면 두 배가 되겠지 뭐. 그렇다고 당장 캐나다로 뜰 수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