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의 안정을 찾을 때 제일 많이 듣는 게 프란츠 리스트의 곡이다. 'Consolation No.3 in D Flat Major'는 평소 난해하고 예민해 있기를 바라는 나를 약간은 감싸 준다. 밝을 듯 서정적인 절제된 감정표현이 모든 것을 위로하고 제자리로 되돌려 놓는다. 랑랑 버전이 가장 취향인데 아무리 음악이 좋아도 그의 앨범 아트는 용납할 수 없다.
패턴을 찾다 보면 일이 일어나기 전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 남들이 충격받는 상황에서 오히려 덤덤해서 그렇지 않은 척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져 난감하기도 하다. 내 앞에서 '서프라이즈'를 벌인 사람의 기분은 어떨까?
나는 학생 때 우등생이었지만 모범생은 아니었다. 귀 밑 5센티와 무릎길이의 치마는 내가 밥 먹듯이 어기는 교칙이었다. 그로부터 5년 뒤, 어떤 연관성을 잃은 그 룰은 전국에서 사라져 갔다.
보통은 비합리에 복종해야지만 물정을 안다는 소리를 듣는다. 나는 어느 쪽인가 하면 분명 물정을 모르는 쪽인데, 동시에 철이 들었다라는 소리를 듣는다. 끔찍한 혼종이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도태'라는 단어를 썼다. 학교는 벌점이면 그만이지만 이 시스템에 융화되지 않으면 도태된다고 말이다. 나는 차라리 자살을 택하겠다.
내게 중요한 것은 옳은 것을 가려내고 정보를 셀렉하는 능력이다. 과녁은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반면교사가 아니면 굳이 알지 않아도 되는 정보도 있다. 비합리는 후퇴다. 저항의 시간 동안 나는 정말로 발전하고 있었다고 확신한다.
정보의 옳고 그름을 가려내지 못한 채 복종하는 사람의 5년 뒤/말로를 생각해 보자. 우두머리가 만든 시스템이 합리/불합리한 지도 모른 채 5년 뒤에 결국 변할 것을 종종걸음으로 따라가게 될 것을 말이다.